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22. 22世 〉4. <요재공>성유(成裕)配 정부인전주이씨행록(貞夫人全州李氏行錄)
1. 문헌 목록 〉22. 22世 〉6. <요재공>증호조참판공휘성유동부인정려기(贈户戶曹參判公諱成裕同夫人旌閭記)
1. 문헌 목록 > 22. 22世 >  
5.<요재공>덕순(德淳)配 유인하동정씨효열비(孺人河東鄭氏孝烈碑)
(요재공후)22世덕순(德淳)配 유인하동정씨효열비(孺人河東鄭氏孝烈碑) 一孝猶難況兼之以烈乎宗族稱之鄉人頌之薦之又薦至再至三則其無溢辭可知孰敢不信謹案其狀孺人姓鄭氏籍河東士人來鉉女玉川府院君農隱趙先生元吉后昌國玄孫弼謙曾孫星斗孫相鎮子德淳齊也年當十八歸于其門事尊舅志體兼養雖遭繼姑之囂誣陷萬方而欲奪其志或分居異炊欲艱其生孺人惟務和順俾不格姦又以繼姑之先歿尤勵志事舅承順倍前澣濯無時得壽大耋而康寧者其孝之大節也至於小郎小姑愛之育之待其成長以昏嫁分炊一無怨言者其孝之推也歸纔二歲而夫癰口吮其瘇祝天願代刲股以食及其無奈擗踊哭泣如不欲生矢以下從既而旋悟從容守正終始如一者其烈之大節也前後喪制致哀致敬爱念後嗣為重猶子東弼為子纔免懷置育膝下教之有方者其烈之推也何如此其至也鳴呼東弼有三男五女馹勳石勳在勳慶州金鍾洙崔鎮澈平澤林洛奉達城徐昌焕全州柳大奎妻也馹勳男世翼光翼連翼石勳男大翼良翼在勳男吉翼餘不盡錄噫易曰積善之家必有餘慶思傳曰栽者培之今孺人年當八旬有五而賢子賢孫善意善事尚享清福以福家孝門見稱焉則宜乎鄉薦之不己也其無所自而然乎其孫馹勳抱狀示余曰吾祖考阡石儀己具而祖母主百歲後將為合兆計願垂一言俾免不明不知之誚焉余瞿然作色曰正重文字何敢乃爾且禮不見經當竢後日何如是汲汲乎辭而不獲畧書如右倘免僣越也否 戊申槐黄節 府院君後孫 東勳 撰 (요재공후)22世덕순(德淳)配 유인하동정씨효열비(孺人河東鄭氏孝烈碑) 효도 한가지도 어려운데 곧 절개까지 겸하니 종족이 칭도하고 고을 사람이 칭송하며 천거하고 또 두번 세번 천거한즉 그 과장한 말이 아님을 가히 알것이니 뉘가 감히 믿지 아니하랴 삼가 그 행장을 살피니 유인의 성은 하동정씨(河東鄭氏)요 사인 내현(士人來鉉)의 따님으로 옥천부원군 원길(元吉)후손 창국(昌國)현손 필겸(弼謙)증손 성두(星斗) 손 상진(相鎮)자 덕순(德淳)의 처였다. 十八세에 그집으로 출가하여 시아버지를 섬기며 뜻과 몸을 함께 기르고 비록 계고(繼姑) 百방으로 시끄럽게 무함(誣陷)하여 그 뜻을 빼앗고저 하고 혹분거하며 생활을 어렵게 하여 못살게 구나 유인은 오직 힘써 화순하야 하여금 간악한대 이르지 아니하고 또 계고(繼姑)가 먼저 죽음으로 더욱 마음을 다하여 시아버지를 섬기며 먼저보다 더욱 승순하고 때없이 세탁하여 입혀 八十상수하도록 강영한 것은 그 효행의 대절이요 시숙 시누이를 사랑하고 길러 그 성장을 기다려 혼가(婚嫁)시키고 분산하되 한결같이 원망한 말이 없음은 그 효도를 미루어 우애한 것이며 우귀(于歸)한 후 겨우 二년에 지아비가 등창이 남에 입으로 그 종기를 빨고 대신 가기를 하늘에 축원하며 다리살을 베어 먹이되 하늘이 무심하야 세상을 마치니 가슴을 두드리고 뛰며 통곡하야 살고저 아니하고 하종(下從)을 맹서하더니 이윽고 때닫고 조용히 정도를 지쳐 종시 여일한것은 그 열행의 대절이고 전후상사에 애걸을 다하고 이에 후사를 존중히 생각하여 족하 동필(東弼)로 양자를 삼아 겨우 어머님 품을 면함에 슬하에 데려다 기르며 바르게 가르친 것은 그 열행을 미루어 자애(慈愛)한 것이니 어찌 이와같이 지극하였든고 슬프다. 동필(東弼)이 三남五녀를 두었는데 남은 일훈(馹勳) 석훈(石勳) 재훈(在勳)이요 녀는 경주 김종수(慶州金鍾洙) 최진철(崔鎮澈) 평택 임낙봉(平澤林洛奉) 달성 서창환(達城徐昌煥) 전주 유대규(全州柳大奎) 처며 일훈남 세익(世翼) 광익(光翼) 연익(連環)이고 석훈남 대익(大翼) 양익(良翼)이요 제훈남 길익(吉翼)이며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아아! 역경(易經)에 가로되 적선한 집 제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하고 전(傳)하여 가로되 심은 자는 북돋운다 하였으니 이제 유인의 춘추가 八十五세로 어진 아들과 어진 손자가 착한 마음으로 잘 섬겨 높이 맑은 복을 누리고 복가효문(福家孝門)으로써 칭송을 받은 즉 향도천장(鄉道薦狀)의 계속이 마땅하도다. 그 손자 일훈이 가장을 가지고 와서 내게 보이며 가로되 우리 조고묘도에 석물을 이미 갖추었고 조모님 百세후에 장차 합편할 계획이니 원컨데 할말을 보태어 하여금 밝지 못하고 알지 못한 꾸지럼을 면하게 해달라 하였다. 내가 눈을 휘둥그리며 얼굴빛을 고쳐 가로되 정중한 문자를 어찌 감히 감당하며 또 예경(禮經)에 보이지 아니하니 마땅히 후일을 기다릴 것이지 어찌 이와같이 급급(汲汲)한가 하고 사절하다 못하고 위와같이 기록하니 혹 참월(僣越)이나 면할는지. 부원군(府院君) 후손(後孫) 동훈(東勳) 撰
 
1. 문헌 목록 〉22. 22世 〉4. <요재공>성유(成裕)配 정부인전주이씨행록(貞夫人全州李氏行錄)
1. 문헌 목록 〉22. 22世 〉6. <요재공>증호조참판공휘성유동부인정려기(贈户戶曹參判公諱成裕同夫人旌閭記)